역사상 가장 빠른공을 던진 사나이...
Steven Louis Dalkowski에 이은... 두번째 레전드선수
그 이름... 사첼페이지...
1906년 7월 7일생 이라고 일컬어져 있는...( 사실 흑인들의 나이는 잘 알수가 없죠... 제대로된 기록이 적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투수라고 부릅니다...
최고의 투수라...
최고투수에게 준다는 싸이영상의 주인공 사이 영(Denton True Young)도 있고

엄청 긴팔을 이용해서 160이 넘는 공을 던진다는월터 존슨(Walter Perry Johnson)

역대 최다 탈삼진 역대 최다 노히트노런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놀란 라이언(Lynn Nolan Ryan)

하지만... 이렇게 최고의 투수!! 라고 들을 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
바로 사첼 페이지(Satchel Paige) 입니다...
일단 그의 이야기를 하기전...
1947년 재키 로빈슨이 브룩클린 다저스에 입단하기까지 메이저리그는 흑인들에게는 넘을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1906년에 태어났다고 일컬어지는 사첼 페이지는
상대적으로 모든것이 열악하고 적은 니그로리그(Negro) 에서 뛰게 됩니다.
사실 사첼페이지가 메이져리그에서 뛴경기는 별로 없습니다..
기껏해봐야 28승이지요...
511승을 올린 사이영보다 28승을 올린 사첼 페이지라...
그가 니그로리그에서 올린 탑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할수 있을꺼 같네요...

그가 해온... 그가 쌓은 말도 안되는 금자탑을 한개 한개 구경시켜 드리지요...
페이지는 세미 프로팀(모빌 타이거즈)의 멤버가 되었고
1926년 20살의 나이에 니그로리그에 데뷔하였죠...
여러 팀에 몸 담았던 그는 니그로리그의 양키즈라 불리는 '피츠버그 크로포즈'(Pittsburgh Crawfords)에서
1937년까지 선수생활을 하였어요
페이지의 니그로리그에서 23시즌 동안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는 이야기지요...
페이지가 밝힌 자신의 통산 승수는 무려 2000승.
23시즌동안에 2000승이라... 그말은 매년 꾸준하게 86.95승을 해야한다는 말인데...
거의 87승정도.... 87이닝도 아니고... 87승... 87경기도 아니고 ... 87승...
그것도 23년간...
그가 이렇게 할수있었던....
아니 할수밖에 없었던것은 니그로리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안오면 관객이 안오는 특성 때문에... 구단주들의 요구가 있었고...
어쩔수 없이...
뛰게 된거죠...
그가 있으면 사람들이 오는 이유...
그는 구단주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선수들에게는 만담꾼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관객들에게는 쇼맨쉽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타자들에게 언더핸드 사이드업 오버스로 다양하게 던지고
다양한 구질로 다양한 방식으로 수비를 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신선한 경기를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수비법은 외야의 선수들을 내야에서 구경시키다가 덕아웃으로 들어오게 하는...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이기기도 하는... 역대 최강의 투수가 맞다는 생각을 떨쳐낼수가 없게 합니다...
니그로리그와 메이져리그의 이벤트 경기를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최강의 타자라는 베이브 루스는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인은 "흑인과 경기할수 없다..." 라고 말했다는데...
혹자들은 사첼과의 시합이 두려운것이 아니냐... 라고 말한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혹시... 후자??? ㅋ)
그리고!!! 그가 메이져로 들어오게 된것은
1948년 클리블랜드로 들어오게 됩니다...
(장난치나... 1948년이면... 1906년에 태어난 인간이...한국나이로는 43살이고 니들 나이로 해봤자... 42살이잖어...
그리고... 어머니가 실수로 염소가 족보를 먹어서 1906년으로 잘못 신고한거라면서...
1904년일수도 있고 1900년 이전일수도 있다면서... 그럼... 이게 사실이면... 훌리오 프랑코는 조낸 고생하다가
낚이는 걸수도 있는거잖어... 밖혀질리는 없을라나...)
이렇게... 1948년에 시작한 그의 메이져리그는... 1952년에는 최고령 올스타에까지 올랐으며
1953년에 메이져의 은퇴... 그리고 나선... 또다시 니그로리그에서 다시 여러곳의 팀을 옮기며 공을 던지다...
그는 1965년 59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깜짝 구원 등판하여
3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당시의 유일한 안타는
최후의 트리플 크라우너(1967)로 남아있는 칼 야스츠렘스키의 2루타였다.
당대의 메이저리그 강속구 투수 디지 딘(1930~1941)
“그와 내가 한 팀에서 뛴다면 우리는 7월까지 던진 뒤에 (8월부터) 낚시를 하며 월드시리즈를 기다릴 것이다. 그의 패스트볼은 나의 최강속구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공으로 만든다.” (참고로 디지 딘은 사첼과의 6번의 경기에서 4번의 패배를 맛봤다고 하네요...)
클리블랜드의 영웅 밥 펠러(266승 162패 3.25)
"사첼의 배짱과 투구에 감탄 할 수 밖에없다"
56경기 연속안타에 빛나는 조 디마지오(1914 ~ 1999)
“그는 내가 보아온 어떤 투수보다도 빠른 공을 던진다.”
페이지는 1971년 니그로리그 출신 선수중 최초로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수 있었던 길을 열어준것은...
의외로... 최고의 자존심으로 무장한 20세기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명예의전당 헌액당시 연설문이었다.

“페이지와 깁슨 같은 선수는 니그로리그의 상징으로 언젠가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단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I hope some day Satchel Paige and Josh Gibson will be voted into the Hall of Fame as symbols of the great Negro players who are not here only because they weren't given the chance.)
마지막으로 사첼 페이지의 동영상... 그리고.. 명언...
사첼은
“홈플레이트는 움직이지 않는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은 전적으로 투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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